2009년 2월 11일 수요일

한국 전통주의 역사

 
1. 조상들이 즐겼던 우리의 술

잘익은 과실이 땅에 떨어져 자연 발효되어 알콜성분을 지닌 술이 된다는 사실로 미루어 술의 기원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 마한 시대부터 한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며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먼저 바치고 춤과 노래와 술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농사를 시작하였을 때부터 술을 빚어 마셨으며 모든 행사에서 술이 애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술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탁주,약주,소주등 세종류의 술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왔고 그 제조방법으로 보아 탁주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탁주에서 재를 제거하여 청주(후에 약주라 칭함)가 되었고. 또 이를 증류하여 소주가 만들어졌다고 해석된다. 탁주는 일명 "막걸리"라 불려지며 이는 막 걸렀다고 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주는 탁주가 먼저 제조되면서 숙성이 거의 끝날쯤이면 술독 위에 맑게 뜨는 액체속에 "용수(싸리 나무로 만든것)"을 박아 맑은 액체만 떠내는 것이 약주(청주)의 상례이다. 약주란 말은 본래 중국에서 약으로 쓰이는 술이란 뜻이나 우리나라의 약주는 약용주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약주라 불리우게 된 것은 약300여 년 전부터인데 이조시대학자 서유거란 사람이 좋은 술을 양조하였는데 그의 아호를 약봉이라 했으며,그가 약현(현 중구 중림동)에 살면서 제조하였다 하여 약주라 부르게 된것으로 전하여 지고 있다.

2. 삼국시대 이전부터 맑은 술 청주는 빚어졌다.

위지(魏志)고구려 전에 의하면 선장양(善藏釀)이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술을 비롯한 발효제품이 잘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당나라 풍류객들 간에도 신라주가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 발효의 바탕은 누룩이었고 누룩으로 술을 빚는 방법은 일본에 전해져서 일본술의 발달을 크게 진보시키기도 하였다.

3. 백제시대 사람 인번(仁番)이 일본을 가르쳐...

중국의 유명한 시인 이상은(李商隱)같은 사람도 신라주를 찬양하는 시를 읊었다고 하니 이미 삼국시대에 곡식을 가지고 만든 곡주에도 막걸리가 아닌 청주가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의 고사기(古史記)에 보면 응신천황(應神天皇,AD27~312)때 백제의 인번이란 사람이 새로운 방법으로 미주(美酒)를 빚었기 때문에 그를 주신(酒神)으로 모셨다고 한다.

4. 일본인이 자랑하는 청주 그 뿌리는 한국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증보리(贈保利)형제가 새술의 창시자로 그들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 새로운 방법이 곧 누룩을 이용한 양조법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인들이 자랑하며 자기들의 술이라는 청주가 실은 그 뿌리를 찾아보면 우리나라의 청주인 것이다.

5. 고려시대의 술

고려시대에는 송.원대의 양조법이 도입되었으며, 전래의 주류 양조법이 발전되어 국(누룩)의 종류도 소맥국(小麥麴)과 미국(米麴)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주품(酒品)도 다양해졌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문종(1046년)때 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釀醞署)를 두어 빚어졌는데 청주와 법주 두종류로 구분되어 질항아리에 넣고 명주로 봉하여 저장해 둔다 하였다.
청주(淸酒)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맑은 술로서 탁주(濁酒)인 흐린 술과 크게 대별된다. 동국이상국집의 시 속에 『발효된 술덧을 압착하여 맑은 청주를 얻는데 겨우 4~5병을 얻을 뿐이다』라 하였고 고려도경에서는『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釀醞署)에서 다스리는데, 청주(淸酒)와 법주(法酒)의 두 가지가 있어서 질항아리에 넣어 명주로 봉해서 저장해 둔다』고 하였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발효된 술덧을 압착하거나 걸러내어 맑은 술을 빚었고 이미 덧술법도 사용하여 알코올 농도가 제법 높은 청주를 빚었을 것이다. 즉 발효가 끝난 술덧을 잘 걸러 내어서 부드럽게 마실 수 있고 맑게 한 술이 청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6. 조선시대의 술

    (1). 조선시대의 대표주 : 우리나라 주조사상 주목할 일은 조선시대에 오면서 지금까지 유명주로 손꼽히는 술들이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술은 고급화 추세를 보여 제조 원료도 맵쌀 위주에서 찹쌀로 바뀌고 발효 기술도 단(單)담금에서 중양법(重釀法)으로 바뀌면서 양보다 질 좋은 술들이 제조 되었는데, 이때 양주(良酒)로 손꼽히던 주품들은 삼해주,이화주,부의주,하향주,춘주,국화주 등이었다. 특히, 증류주는 국제화 단계로 발달하여 대마도를 통하여 일본,중국 등에 수출이 빈번하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자가제조가 허용되어 자유로이 발전되었으나 중국에서는 국가가 제조를 관장함에 따라 우리술의 수출이 용이하여 더욱 발전되었던 것 같다. 조선 후기에는 지방주가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지방마다 비전(秘傳)되는 술들이 맛과 멋을 내면서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때의 명주로는 서울의 약사춘,여산의 호산춘,충청의 노산춘, 평안의 벽향주,김천의 청명주 등이 유명한 술들이다.

    (2). 조선시대에 유입된 외래주 : 조선시대에는 다채로운 술들이 개발되었고 적지 않은 외래주가 공존하였다. 이 시대에 유입된 외래주로는 천축주(天竺酒),미인주(美人酒),황주(黃酒),섬라주(暹羅酒),녹두주(綠豆酒),무술주(戊戌酒),계명주(鷄鳴酒),정향주(程香酒) 등이다. 

    (3). 조선말기의 술 : 19세기 조선말에는 국제화시대로 접어들게 됨에 따라 외국과의 정보교환이 쉬워지면서 양주문화가 도입되었으며, 주세법이 생기기 이전에 자가제조 및 판매가 자유로웠던 관계로 술도 다양화 되고 주세법 창설 당시 제조장수는 무려 155,632개소나 되었다. 1907년 7월에 조선총독부령에 의한 주세법이 공포되었고 같은해 8월에 시행령이 공포되면서 전래주는 잠적하기 시작했으나 그래도 밀주가 성행하게 되자 1916년 1월에 주류단속이 강화되는 가운데 모든 주류를 탁주,약주,소주로 획일화시켰다. 1917년 부터는 주류제조업의 정비가 시작되면서 자가양조는 전면적으로 금지되었고 1920년을 기점으로 신기술이 도입되어 재래식 누룩을 사용하던 방법에서 흑국,황국의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활동됨과 동시에 전통주는 대부분 맥을 끊기게 되었다.

★. 소주의 변천과정 : 우리 나라의 소주 제조는 고려시대를 비롯하여 이조시대를 지나는 동안 약간 변천되었으나 양조과정이나 방법에 있어서 뚜렷한 발전없이 재래식방법으로 가정용 솥과 시루와 솥뚜껑을 이용하여 소주가 제조되었으며 판매목적으로는 "고리"라는 증류기를 이용(토고리,동고리,철고리 등)하여 만들어졌다. 1916년 일제가 주세법을 공포, 시행함에 따라 일본인들이 많은 자본으로 소주 제조장을 기업화하기 시작하여 종래의 단식증류기에서 연속증류기로 소위 신식(당밀소주)을 대량 생산함에 따라 치열한 판매 경쟁이 벌어지게 되어 1916년경에는 소주 제조장이 무려 28,416개소(남북전체)나 되었던 것이 1933년경에는 430개소로 대폭 도태되었다. 1927년에 이르렀을 때는 주정과 물을 희석한 희석식소주가 상당한 진전을 보여 희석식소주의 개화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종식으로 인하여 양조업체가 한국인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양조용 양곡사용 제한의 철폐로 활기를 되찾았으나 국토가 남북으로 양분되고 정치적 혼란을 틈타서 소규모의 밀조주가 성행하게 되었으며, 그 후 1950년 6.25사변의 반발로 주류제조장이 피해를 당하였다가 1953년 휴전 이후 안정을 되찾기에 이르렀다.
 1965년 1월부터 시행된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소주의 원료 대체가 불가피하게 됨에 따라 전국의 수많은 증류식소주 업체들이 희석식소주로 전환하여야 하는 진통속에서 곡류원료의 증류식소주는 제조금지되었다. 세제도 1968년에는 종량세제에서 종가세제로 변동되었으며, 필요이상으로 난립상태였던 소주제조장을 1970년도에는 합동제조할 수 있도록 통합방침을 세우고 당시 기업화된 대업체(5개 내외)를 제외하고 280여개(1.8ℓ) 생산업체로 규격 미달의 저질 생산주류와 치열한 판매경쟁으로 유통질서가 극히 문란하게 되어 당국은 5개 제조장 이상으로 자진합동 할 때에만 됫병소주 제조를 허용하도록 강력히 통합을 유도한 결과 60개소로 합동체계를 갖추고 집약제조 형태를 유지하여 운영하였으나 부실한 경영 상태는 여전하였다. 그리하여 국세청은 1973년 4월부터 3개월간에 걸쳐 주류관련 규정으로서 주류관리 규정을 마련하여 주조법에 대한 통폐합으로 대단위화하고 차제에 부실업체를 정비할 목적으로 주류제조 통폐합정책을 수립하고 1973년 7월부터는 본격적인 통합작업에 착수하여 제조장 시설기준, 제조장별 제조비율제, 주원료 배정제(가배포함) 및 자가병 사용 등을 제도화하고 현대화된 위생적인 시설을 갖추도록 하여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건전기업으로 육성발전 하도록 지원함으로써 현재 10개 소주업체가 각도에 1사씩 존속하고 있다.

7. 1960년대 이전

60년대까지 국내주류업계의 제품은 탁주,약주,청주,맥주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소득향상에 따른 소비자의 기호변화에 대응하여 각종 고급주류가 개발되므로써 탁주와 청주의 수요는 점차 줄고 소주와 맥주는 상대적인 신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기간 중에는 6.25사변 후 복구와 5.16 후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필요한 재정수요의 충족을 위하여 세수증대 목적에서 주세행정이 추진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주세의 비중이 상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66년도 주세의 총내국세 점유비 9.1%,총간접세 점유비 18.8%) 이를 위하여 주류규격제,제조장시설기준,기준석수제,주세납세증지제 등을 실시하고 밀조주 등 부정주류 단속이 강력하게 실시되었다.

8. 1970년대

1960년대 이전까지는 제조 및 판매업의 면허가 특별한 자격요건이나 기준없이 부여되었다.그러다보니 영세한 제조.판매업체의 난립과 과당경쟁으로 업계가 파산되고 주류유통질서가 문란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무질서상태를 정리하기 위하여 1973년부터의 주류제조장 통폐합과 신규제조면허 불허,1976년 주류도매장 통합 및 신규도매면허 불허를 강력히 추진하였고, 이러한 주류제조 및 판매업 면허는 80년대까지도 그기반이 유지되고 보완적인 범위내에서 운영되었다.

9. 1980년대

1970년대의 주류제조 및 판매업 면허의 정비로 주세행정은 대외적으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므로 80년대에는 내부적인 행정체계 정비에 중점을 두었다. 그 이전의 주류관리규정,주정관리규정,주류 및 발효제면허관리규정,주류유통에관한규정,주류업단체허가규정을 통폐합하여 1980년 3월 주세사무처리규정으로 제정하고 각종 예규를 정리하여 1982년 2월 주세기본통칙을 제정 시행하였다. 아울러 국민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개최 등에 따라 유흥업소들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 무자료 주류유통이 증가하자 주류유통질서 확립을 위하여 주류도매업체의 유통과정 조사와 무자료주류 단속이 강화되었다.

10. 1990년대

1980년대 말부터 자율화,개방화,국제화 추세가 시작되자 범정부 차원의 행정규제완화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주세행정은 규제완화의 주요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미국 및 EC와의 무역관련 협상에서도 주류시장 개방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이러한 시대상황에 따라 국세청의 주도로 발전적인 개선을 추진하여 왔으나 일부는 관련부처의 요구에 부응하여 수용된 경우도 없지 않았으며 이 경우에도 단계적 개방 및 사후관리대책 등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위한 국세청의 노력이 경주되었다.
이 기간 중에 추진된 주요 업무로는 1990년도의 주류도매면허 개방,1991년부터의 제조면허의 단계적 개방,1992년 자도소주 판매제 폐지,1993년 약주공급구역폐지와 소주용 주정배정제 폐지가 있었으며 위스키,포도주 등 거의 대부분의 주류가 단계적으로 수입개방되었다.
1995년 주세법개정에 따라 자도소주 50% 의무구입제가 부활(1996.12.위헌결정 폐지)되었고 1997년에는 종합주류 도매면허제도를 인구수와 판매량 증가에 따라 신규면허를 허용하는 제도(지역별 T/O제)도입하였으며,1998년부터는 탁주신규도매면허도 전면 개방하게 되었고 국민의 정부 출범과 더불어 추진된 규제개혁 작업의 일환으로 주류 부분에 대해서도 대폭적인 규제개혁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11. 향후 발전 방향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통적인 대중주라 할 수 있는 탁,약주가 보편화되지 못하고 한계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탁,약주제조업자의 영세성으로 시설투자 및 주질개선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제조장의 대형화로 주질개선을 하여야 하고 수입주류에 대한 경쟁력을 제고하여야 한다.
장기간 탁주면허 동결로 인한 기존 도매업체들의 독점폐단을 해소하고 사양되고 있는 탁,약주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1997.12.20. 도매면허를 개방하고 99.1.부터는 특정주류도매면허로 통합하였는바, 이는 행정규제를 철폐하고자 하는 정부시책에도 부합되는 것으로서 탁주제조자들은 도매면허 개방취지에 따라 유통구조를 개선하여 타 주류와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www.koreanso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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