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께서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셨다.
가을에 신곡이 수확되면 높은산에 올라가 여러신께 제사를 지냈다. 제사에는 신곡으로 만든 떡과술, 그리고 소를 잡아서 제단에 올렸다고 한다. 농사를 天下之大本 이라고 했거니와 이 제사를 신이 가르쳐 주신 농사법에 의해서 지은 곡식을가지고드리는 것이라는 뜻에서 신농제(神農祭)라고 했으며 소를 양념을 넣지 않고 국으로 끓여 참배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먹게 했다. 먹을때 소금만으로 간을 맞추어 먹게 했는데, 이 국을 신농탕(神農湯)이라고 했으며, 햇곡으로 빚은 제주를 신농주(神農酒)라 일컬었다 한다. 이 술은 현재 막걸리와 같은 것이며 오늘날 농촌에서 막걸리를 농주라 하는 것도 이 신농주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볼수있다. 술의 본래말은 "수블/수불" 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수울", "수을"로 기록되어 있어, 이 수블은 "수블→ 수울 →수을 → 술" 로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수블"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술을 빚는 과정에서 비롯된것이 아닌가 한다. 즉 술을 쪄서 익히고 여기에 누룩과 주모(酒母)를 버무려 넣고 일정양의 물을 부어 빚는다. 이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이루어져 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부글부글 물이끓어오르며 거품이 괴는 현상은 옛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술을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지>, 부여 전에는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행사가 있었으니 이를 영고(迎鼓)라 하였다. 상고시대에 이미 농업의 기틀이 마련되었으므로 우리나라 빚기 시작한 술도 역시 곡류를 이용한, 즉 막걸리와 비슷한 곡주였으리라 생각된다. 막걸리는 탁주 또는 탁빼기라고도 하는데 원래 고두밥(술밥)에다 누룩을 섞어 빚은 술을 오지그릇 위에 #자 모양의 나무걸치개를 걸치고 체로 막걸러 만들었다. 그러면 뿌옇고 텁텁한 막걸리가 얻어졌던 것이다. 옛날사람들은 술만드는 법을 육재(六材)라하여 여섯가지 재료를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알아왔다. 첫째 는 쌀을 고를 때는 벼가 펼 때부터 일제히 익은 벼를 골라 쌀을 준비하고, 둘째는 누룩을 적당한 시기에 만든것을 골라야 한다고 했다. 즉 누룩을 여름에 잘 골라 뜨게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쌀과 누룩을 섞어 서 술을 담글때 깨끗하게 다루어야하고. 넷째는 샘물이 좋은것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좋은 도기를 사용하라고 되어있다. 여섯째는 고루 술이 익도록 온도를 잘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좋은 도기를 사용하라고 되어있다. 일제 때 편찬된 조선 주조사에 보면 '막걸리는 처음으로 대동강 일대에서 빚어지기 시작해서 나라의 성쇠를 막론하고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어 민족의 고래주가 되었다' 고 소개하고있다. |
2009년 2월 11일 수요일
막걸리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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