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1일 수요일

막걸리의 올바른 이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은 막걸리였다.
그런데 요즘은 푸대접 을 받고 있으며 외래주의 소비가 급증하고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막걸리를 농주라 해왔으나 농민만이 마시던 술이 아니었고 일반대중에게 가장 친숙했던 음료였다.

마한의 풍습으로 5월 밭갈이할때와 9월 농사를 거둘 때면 하늘에 제사하고 주야로 주연을 베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관혼상제나 농사를 지을 때에는 꼭 있어야 하는 필수품 이었다.

가장 역사가 오래 되었고 소박하게 만들어진 술,막걸리는 고려 때에 이화주 (梨花酒)라 부르기도 하였다. 막걸리용 누룩을 배꽃이 필 부렵 만든데서 유래한 것이었다.
참으로 낭만적인 이름이었다. 또한 일제때 편찬된 조선 주조사에 보면 막걸리는 처음으로 대동강 일대에서 빚어지기 시작해서 나라의 성쇠를 막론하고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어 민족의 고래주가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막걸리는 분명히 우리의 역사가 담긴 민속주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전통주가 현재, 제 모습을 갖추고 온국민의 사랑과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맛이 왜래주인 맥주나 양주보다 못해서 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모든 것처럼 우리 역사의 비운에서 시작 한다.

조선말, 빠르게 변모하는 국제정세의 흐름속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대한제국의 종말과 더불어 조선총독부에 의한 일제의 수탈작업이 시작되었다.일제는 1907년 7월에 조선총독부령에 의한 주세령 공포로 제일 먼저 주세를 세금원의 대상으로삼고, 같은 해 8월에는 주세령시행규칙 공포가 있었다.

또 9월에 주세령의 강제 집행이 시작됨과 동시에 전통주는 맥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1916년 1월에는 주류 단속이 강화되는가운데 전통주류는 약주, 막걸리, 소주로 획일화시켜 우리의 전통 고급주를 사장시켰고, 1917년부터는 주류 제조업 정비가 시작되면서 자가 양조를 전면적으로 금지, 각 고을마다 주류 제조업자를 새로이 배정하였다.

1930년대에는 집에서 담그는 술 제조는 거의 사라지고 이에 따라 각지방에서의 비법도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더우기 일본은 주세징수에만 중점을 두어 품질개량은 소홀이 하고 일본 청주의 범람으로 우리의 탁, 약주는 전혀 개량되지 못했다. 이로써 우리의 주류문화는 침몰되는 주조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1945년 광복 후에도 일제치하의 주세 행정이 그대로 이어져 다양했던 전통 주류는 잠적을 거듭하였다. 특히 우리의 막걸리는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이유로 재료를 쌀 대신에 잡곡을 사용도록 하였고 이로인한 맛의 저하로 우리의 입맛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또한 격동의 현대사를 지나면서 들어온 외국문화와 같이 들어오게된 양주나 맥주가 현대화라는 대중적 인식속에 빠르게 우리의 입맛을 잠식해 우리의 술은 대중에게서 더더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90년대에 들어서 막걸리의 원료가 100% 쌀로 바뀌면서 잃었던 우리의 맛을다시 찾게 되었고 제조공정도 과학화 됨에 따라 더욱 향상된 맛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이제는 막연히 우리의 술을 외면만 할것이 아니라 지키고 계승시켜 나아가 왜곡되었던 우리의 주조사를 다시 써야할 것이다 .


출처 : http://www.koreaw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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