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9일 목요일

모든 생물의 족보, 생명의 나무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세상에서 오직 우리 인간뿐이다. 다윈 이후 지구의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유래했다는 생각을 품게 되면서 많은 생물학자가 전체 생물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더 나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헌신해왔다.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또는 계통수(系統樹)라고 불리는 이 그림의 최신 버전이 3월 사이언스지에 소개됐다.

최초의 계통도 중 하나인 1866년에 그려진 에른스트 헤켈의 계통수
우리는 어떻게 생물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까. 침팬지가 닭보다 생쥐에 가깝다는 사실은 쉽게 추측할 수 있지만 효모나 벼, 대장균 중 어느 것이 침팬지에 가장 가까운지 따져보는 건 난감하다. 판단의 기준이 되는 유사성이나 차이점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양한 종류의 생물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모든 생물은 하나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도 비교할 수 있는 지표가 남겨져 있다. 바로 생명현상의 유지에 가장 기초적인 기능에 관련된 유전자들이다.

침팬지와 효모, 벼, 대장균 모두 DNA로 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 또한 DNA의 유전정보는 DNA를 RNA로 복사하는 과정인 전사와, RNA 정보에 따라 단백질을 합성하는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 기능을 발휘한다. 생명현상의 기본이 되는 이런 과정은 모든 생물의 공통적인 특징이며, 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다. 이들 유전자는 최초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여러 종으로 분화해오면서 기능에는 변함이 없더라도 종에 따라 약간씩 달라진다. 따라서 두 종간에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비슷할수록 최근에 갈라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이 유전물질이 DNA임을 발견한 이후 분자생물학의 발달에 힘입어 2001년에는 인간의 전체 게놈이 해독됐으며 지난해에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의 게놈까지 밝히는 쾌거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의 땀방울로 다양한 종의 게놈 정보 뿐만 아니라 이를 비교해 서로의 관계성을 추정할 수 있는 분석기법, 이 과정에 필요한 방대한 양의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까지도 갖게 됐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생명의 나무 계통수. 이미지제공 :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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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과를 토대로 독일의 유럽 분자생물학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현재 게놈 염기서열이 밝혀진 191종의 생물에서 번역과정에 관련된 31개의 유전자들을 비교해 그림과 같은 ‘생명의 나무’, 계통수를 얻기에 이르렀다.

또한 새로운 종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계통수를 그리는데 적합하지 않은 부분을 제외시키고 계통수가 새로 그려지도록 했다. 앞으로 게놈이 밝혀지는 종이 추가될수록 생명의 나무는 더 많은 가지를 달게 된다.

계통수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그림에서 가운데 세개의 선으로 갈라지는 부분은 모든 생물의 공통조상을 의미한다. 거기에서 뻗어나가는 세개의 선은 각각 고세균, 진핵생물, 진정세균의 큰 가지다. 각 가지의 끝에는 해당하는 생물종의 학명이 표기돼 있다.

생물을 가장 크게 두가지로 나누면(바이러스 제외) 막으로 둘러싸인 핵, 선형의 염색체, 막 구조를 가진 다양한 세포소기관을 특징으로 하는 진핵생물과 이런 특징이 없는 원핵생물로 나뉜다. 그림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진핵생물에 해당하며 여기에는 생물의 6계 중에 동물계, 식물계, 원생생물계, 균계가 포함된다. 녹색영역은 고세균계, 청색영역은 진정세균계이다.

그림에서 가지가 뻗어나간 길이는 유전적인 거리를 의미한다. 진정세균계로 뻗어가는 가지에 그어진 사선은 보기 편하게 하기 위해 길이를 축소시켰다는 표시다. 2시 방향에서 인간(Homo sapiens)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옆에는 침팬지(Pan troglodytes)와 생쥐(Mus musculus), 쥐(Rattus norvegicus)가 있다.

가지를 따라 올라가면서 만나는 가지를 살펴보면 곰팡이나 효모, 버섯 등이 속하는 균계(Fungi)를 식물계(Plantae)보다 먼저 만나게 된다. 즉 균계가 식물계보다 우리가 속한 동물계(Metazoa)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동물과 식물을 보며 느끼는 생명의 다양성은 생명의 나무에서 작은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이 계통수를 그리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생물간의 관계를 통해서 다양한 가설을 시험할 수 있다. 이 계통수에서 가장 짧은 가지에 위치한 종이 온도가 높은 곳에서 사는 미생물이라는 점은 생명이 온도가 높은 곳에서 탄생했다는 가설을 지지해준다. 또한 이 계통수는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새로운 미생물을 찾아내는 학자들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된다.

현재 지금까지 지구에서 발견된 생물은 약 200만 종으로 인간은 이들 모두에게 이름을 붙였다. 생물학자들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생물이 이보다 열배 정도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종이 연구되고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더 나은 분석방법이 개발되면서 지금 우리가 보는 계통수는 수정되고 보완될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생명의 나무의 세부적인 가지를 그려내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더 완벽한 생명계 밑그림을 보고 싶다면 먼저 다음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간으로 인해 수많은 가지들이 그려지기도 전에 잘려나갈 위기에 처해 있음을.

참조사이트
계통별 생물의 이미지와 설명 사이트
최신 버전의 계통수 제공 사이트
출처 :  글 | 강석하/과학통신원 충북의대 기생충학교실 연구원ㆍscattre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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